현관 앞에서 멍하니 서 있던 시간
퇴근하고 집에 오면 습관적으로 도어락 덮개를 올리고 숫자를 누른다. 그런데 어제는 그게 잘 안 됐다. 아니, 안 된 게 아니라 머릿속이 하얘졌다. 평소에 너무 익숙해서 생각도 안 하고 누르던 번호였는데, 왜 그 순간에 갑자기 숫자들이 섞여서 기억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며칠 전부터 도어락 배터리가 낮다는 경고음이 조금씩 났던 것 같기도 한데, 건전지를 갈아야지 생각만 하고 차일피일 미뤘던 게 화근이었나 싶기도 하고. 복도식 아파트라 밤늦은 시간에 계단실 센서등이 꺼지면 금방 어두워지는데, 하필이면 그때 딱 불이 꺼져서 더 당황했던 것 같다.
5분 고민하다가 결국 전화기부터 찾았다
한참을 서서 숫자를 조합해 보다가 안 되겠길래 친구한테 물어볼까 잠시 고민했다. 예전에는 도어락 비번 까먹었을 때 열쇠 업체를 부르면 출장비가 꽤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대략 5만 원에서 7만 원 정도 든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 돈이 아까워서 끙끙대는 내가 좀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도어락이 방전된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기억을 못 하는 상황이라 더 막막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업체에 연락하기가 좀 눈치 보였지만, 계속 문 앞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결국 성남 근처에서 도어락 출장하는 곳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새벽에도 올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게 제일 먼저였다.
업체를 부를 때 느꼈던 묘한 불편함
솔직히 문을 따주는 사람을 부른다는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왠지 내가 내 집에 못 들어가는 상황이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싫고, 낯선 사람이 와서 우리 집 도어락을 만지는 것도 조금 불안했다. 예전에 뉴스에서 도어락 관련해서 안 좋은 사건들도 가끔 봐서 그런지 더 예민해졌던 것 같다. 결국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비용을 물어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출장비가 더 나온다는 말에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밖에서 노숙하는 것보다는 낫지 싶어 알겠다고 했다. 기다리는 30분 동안 복도에서 서성거리면서 괜히 집주인한테 연락해서 비번을 물어봐야 하나 생각했는데, 집주인이 비밀번호를 알면 나중에라도 찜찜할 것 같아서 그냥 참았다.
도어락 기술이 참 양날의 검이다
도어락이 처음 보급될 때는 참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열쇠를 안 들고 다녀도 되고, 스마트폰 앱으로 연동해서 가스 차단이나 외부인 확인도 가능하니까. 그런데 이렇게 한 번씩 먹통이 되거나 내 머릿속에서 번호가 사라지면 그냥 평범한 물리 열쇠가 훨씬 편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마트 안심주택이니 뭐니 하면서 온갖 센서가 다 달린 최신 도어락이 좋다고는 하지만, 결국 나 같은 사람한테는 익숙한 게 제일이다. 기사가 도착해서 뚝딱거리는 걸 보고 있는데, 불과 5분도 안 돼서 문이 열리는 게 허무했다. 역시 기술은 기술이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나는 그렇게 한참을 밖에서 서성였나 싶어 스스로가 답답했다.
여전히 남은 찝찝함과 다음의 고민
문은 열렸고 기사님은 가셨는데, 왠지 오늘 밤은 도어락을 쳐다보는 게 조금 낯설다. 비밀번호를 바꾸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그냥 써도 되는 건지 확신이 안 선다. 기사님은 아무 문제 없다고 하셨지만, 어쨌든 낯선 사람의 손길이 닿은 도어락이라 그런지 조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비상용으로 물리 열쇠를 하나 어디다 숨겨두는 게 좋을지, 아니면 지문 인식되는 걸로 아예 바꿔버릴지 지금도 고민 중이다. 아마 내일쯤 되면 그냥 잊어버리고 평소처럼 살겠지만, 오늘 밤은 문단속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고 잠들 것 같다. 도어락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복잡한 기분이 들 줄은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