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안전 점검과 LOTO 규정이라는 생소한 단어
공장 설비 보수나 전기 판넬 만질 때 그냥 차단기 내리고 포스트잇으로 ‘작업 중 만지지 마시오’ 적어 붙여놓던 게 우리 일상이었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아무도 안 만질 거라 믿었고 실제로 지금까지 별 탈은 없었다. 그런데 지난달에 안전보건공단 쪽에서 점검이 나오더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지적을 했다. LOCKOUT/TAGOUT, 줄여서 LOTO라는 잠금장치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체결하고 작업해야 한다며 규정 위반이라고 딱딱하게 굴었다. 처음에는 그냥 대충 철물점 가서 일반 자물쇠 아무거나 사서 걸어 잠그면 끝나는 일인 줄 알았다. 귀찮은 일이 하나 더 늘었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구로공구상가에서 겪은 첫 번째 시행착오
빨리 해결해서 지적 사항 보고를 올려야 했기에 시흥 시화공단 근처에 있는 자재 가게랑 평소 자주 가던 구로기계공구상가 내부의 철물점을 먼저 돌았다. 그냥 적당히 튼튼해 보이는 황동 자물쇠 몇 개 사 오려고 했는데, 단골 가게 사장님이 전기 작업할 때는 일반 철이나 황동 자물쇠를 쓰면 감전 위험이 있어서 규정에 걸린다고 알려주셨다. 플라스틱이나 전기가 통하지 않는 특수 재질로 된 전용 LOTO 자물쇠를 써야 과태료를 안 문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가장 많이 쓰는 브랜드가 브레디(Brady) 제품이었다. 일반 국산 황동 자물쇠는 몇 천 원이면 사는데, 브레디 비전도성 나일론 패드락은 인터넷에서 개당 18,000원에서 25,000원 선으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어서 생각보다 지출이 크게 생겼다.
브레디 비전도성 자물쇠와 차단기 잠금장치 배송
회사 카드로 예산을 올려서 결제해야 하느라 품의서 쓰고 승인받는 데만 이틀이 걸렸다. 결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브레디 차단기 잠금장치와 LOTO 자물쇠 세트를 주문했다. 택배가 사무실에 도착하는 데까지 주말 끼고 4일 정도 걸렸다. 상자를 열어보았는데 처음 만져본 느낌은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다. 쇠 자물쇠처럼 묵직한 맛이 없고 가볍고 허접한 플라스틱 장난감 같았다. 하지만 본체가 비전도성 제논이나 나일론 재질이라 전류가 흐르지 않게 설계되었다고 하니 규정상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주문한 건 개별 열쇠 타입(Keyed Different)이었는데, 현장 작업자들끼리 열쇠가 서로 맞으면 안 된다고 해서 이 옵션을 골랐다. 열쇠가 다 다르게 생겨서 섞이면 큰일 나겠다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생각보다 복잡했던 차단기 규격과 현장 설치
배송받은 부품들을 들고 메인 배전반 차단기에 잠금장치를 물리려고 현장으로 내려갔는데 여기서 또 버벅거렸다. 브레디에서 나오는 차단기 잠금장치 종류가 너무 세분화되어 있어서 우리가 쓰는 구형 차단기에 딱 들어맞지 않았다. 미니어처 차단기용, 대형 차단기용, 조임 나사식 등 규격이 여러 가지였는데 대충 눈대중으로 맞겠거니 하고 산 다목적 차단기 잠금장치가 스위치 두께보다 헐거웠다. 나사를 끝까지 조여도 손으로 힘주어 당기면 쑥 빠져버렸다. 결국 공구함에 굴러다니던 얇은 고무판을 잘라서 틈새에 덧대고 나서야 겨우 고정할 수 있었다. 한 1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현장 설치 작업이 판넬 세 개 붙잡고 낑낑대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실제 사용하면서 느끼는 사소하고 짜증 나는 부분들
겨우 설치를 마치고 나니 이번에는 자물쇠 열쇠 작동 방식이 사람을 귀찮게 했다. 브레디 자물쇠는 안전을 위해 키 홀딩(Key Retaining) 기능이 들어가 있어서, 자물쇠가 열려 있는 상태에서는 열쇠가 뽑히지 않았다. 무조건 고리를 채우고 잠가야만 열쇠를 뺄 수 있는 구조였다. 평소 열쇠를 빼둔 상태로 고리만 꾹 눌러 잠그던 습관이 있다 보니, 자물쇠를 잠글 때마다 주머니에서 열쇠 뭉치를 꺼내서 일일이 꽂아 돌려야 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종이로 된 태그(Tag)는 현장 먼지랑 기름때 묻은 장갑으로 몇 번 만졌더니 벌써 꼬죄죄해져서 글씨가 보이지도 않았다. 규정 때문에 달아놓긴 했는데, 바쁜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이걸 매번 정석대로 풀고 잠그며 태그를 관리할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